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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는 단상으로 올라가 힘차게 숨을 들이마셨다. 초속 100km의 속도로 피치파 마을을 아우르는 쾌청한 공기와 온갖 냄새가 지지의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지의 뱃속에는 때마침 형광색 버섯과 곰팡이와 이끼가 자라고 천장에선 잿빛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 어마무시한 콧바람이 들이닥치면서 그녀의 뱃속에서 벌어지던 사랑스러운 난장판은 흔적도 없이 쓸려나가고 말았다. 마침내 속이 텅 빈 느낌을 받은 지지는 뱃가죽을 문지르며 여러분을 향해 빙그레 웃었고, 리스피어 교수가 화답해주자 그녀의 뱃속에선 침착함과 용기라는 싹이 하나씩 솟구쳐 올랐다.

 “지지  헌팅턴입니다! 오늘 저는 그동안 작성해온 논문의 중간 단계를 발표하려고 합니다.”

 그녀 곁을 빙글빙글 돌던 소환수가 차례로 등 뒤에 붙더니 곧 여러 개의 손이 되어 거미처럼 쑥 튀어나왔다. 그러자 꼭 여러 개의 손으로 광채를 쥔 비슈누처럼 보였지만, 이곳에는 비슈누라는 것이 없으니 지금 지지의 모습을 설명할 말이 없을 테다.

 지지는 여러 개의 손으로 설명조의 행동을 덧붙이며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제 논문 제목은 <약학적 관점에서 본 불로불사와 그에 따른 연금술 활용에 관한 연구>입니다. 여기서 불로불사란 동방 대륙에서 온 개념으로, 병들지 않거나 노화를 막음으로써 오래 사는 것 또는 죽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약학적으로, 노화라는 것은.”

 죽음에 대하여. 그것은 아주 오래되었고 무척이나 친숙하게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도 지지는 바닥에 엎어져있거나 침대에 누워있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피는 뜨겁거나 차가운 온도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까끌까끌하거나 날카롭다는 촉각으로 다가오곤 했다. 죽는 건 무서워, 어릴 땐 그렇게도 생각했었다.

 언젠가 지지의 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하지만 괜찮아질 거란다. 그런 몸을 물려줘서 미안해.” 엄마의 장례식에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참여했다. 지지는 엄마의 인복이나 명성 같은 걸 생각해보았고, 어쩌면 그녀가 될 수 있을 법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나는 엄마를 원망한 적이 있나? 엄마의 죽음은 지지가 어렴풋하게 느끼던 감정 모두를 하나로 짓눌렀다. 지지는 때로 정말이지 엄마가 그리웠다. 그래서 침대에 눕거나 각혈을 할 때마다-특히 어릴 적에 강렬하게 찾아오곤 했던 핏줄에 대한 원망, 어렴풋한 분노 같은 건 아무렴 좋다고 얼렁뚱땅 퉁치기로 했다.

 ‘대인배의 마음! 아주 중요한 거야!’ 어느 순간에는 정말로 죽는 게 무섭지 않았다. 삶을 살아가는 일도 괜찮아졌다.

 “흘러내리는 피를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상처를 봉합하는 의학마법의 원리를 연금술에 응용한다면, 완벽한 불로불사는 아니더라도 흠집이 나지 않는 단단한 피부, 의도적으로 성장을 저해-발육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일부 기능의 성장을 저해시켜야 하겠지만요-하는 일 따위를 의도해볼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선 인간의 신체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할 것이므로, 설령 가능하다고 한들 불로불사까진 아주, 아주, 아아아주 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요약하자면.”

 지지가 찹 두 손을 모으자 등 뒤에서 뻗어 나온 세 쌍의 손이 동시에 오케이! 사인을 외쳤다.

 “불로불사는 불가능해.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우리 모두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입시다!”

 아차, 너무 들떠서 마지막엔 결국 지지 같은 마무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의도한 걸까? 지지는 무거운 죽음 같은 건 바라지 않으니까. 병드는 일, 피를 보는 일, 사랑 속에서 미움을 더듬거리는 일 같은 건 이제 아무래도 좋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졸업 전까지 다른 실마리를 찾게 된다면 좋겠네요!”

 ‘그래도 죽는 건 싫어~’

 오,지지.

 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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